휴머니즘2

나는 정말 괜찮아요 내 눈을 보고 슬프다 하지만 나는 동료들 아니면 슬프지 않아요 그들은 동료가 아니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이들이니까요. 좋아하는 이들과 헤어진다고 슬프지는 않아요 슬프지 않고 딱해요 우리같이 많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분명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딱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는 이들이니까요 그래서요 우리는 동료가 아니면 슬프지 않아요 딱해서 기다리는 것이랍니다! 나는 걱정해요 나는 동료도 있고 풀도 있고 꽃도 있고 좋은 냄새도 너무 많지만 그들은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얼마 전에 거동이 불편한 아주 작은 이 하나가 집에 오고 나서는 집에 있던 온갖 좋은 냄새란 냄새는 모두 사라졌어요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살 지 걱정이 되고 정말 딱해요 우리같이 많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분명히 말예요 나중에 후회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이 좋아하는 장소에 나를 묶어둔 것이 분명합니다 혹시나 내가 도망갈까봐 그랬나봐요 그들은 생각보다 어리석지 않아요 후회라는 것도 잘 알고 자주 사과했어요 미안하다고 하고 떠났어요 다음번에는 사과하러 올 거예요 맛있는 것도 많이 가지고 오겠지요? 동료들은 자주 찾아옵니다 여기 동료가 아주 많네요? 모두들 딱한 이들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제법 이상해 보이는 이들이 데리고 간 동료도 있었고요 엉엉 우는 이들이 데리고 간 동료도 있었어요 어떤 동료는 누군가 사과하러 오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그냥 죽었나 봐요 사랑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이들이었는데 사랑이 아주 없으면 죽기도 하나 봐요 정말 딱하죠? 어제 저에게도 우는 이 하나가 와서 맛있는 것을 한참 주었어요 참 딱해요 제가 그에게 사랑을 많이 주어서 좋았어요 오늘도 또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같이 살던 정말로 딱한 이들이 생각나요 사랑이 없어서 딱한 이들이 생각나요 영영 죽은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동료가 아니면 슬프지 않아요 슬프지 않고 참 딱해요 

세상에 우리같이 많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비 오는 날 목이 거의 매달릴 정도로 묶여 있던 집시는 동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사람을 너무나 좋아했다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사람을 향해서는 짖은 적 없다고 한다 집시는 오래 살았다 오래 살고 사람처럼 떠났다 사람처럼 말을 안 듣고 혼자 떠났다

(방울 마음? 제철? 익어가는 것?)

접시에 하나 올려두고 생김새를 자세히 보면, 분명히 길쭉해. 내가 알던 것은 동그란데 이것은 길쭉하단 말이지.씹으면 아삭아삭 나도 제법 익었어요 하는 말을 외치는 것 같고.

나도 과일입니다, 외치는 것만 같고.

제 마음도 제철입니다, 말하다 자꾸 헛웃음이 샌다.

찌개에 넣어도 맛있다고 해요. 풍미를 높여준다고 합니다. 요즘 유행.
한 번, 또 한 번 몇 개씩 으깨어 끓여서 먹다 보면 또 얼마.

그리 얼마간, 하나 둘 생김새도 살펴보고, 찌개를 끓여보면.

찌개, 그래 애써 찌개를 끓여 보면.

말하기 수업 2

진심을 다해보세요 말로 감정을 표현해 보세요
마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말해보셔요

저는 다짜고짜 화도 내고 욕도 지껄이고 조롱도 합니다
모두 연극입니다만

그것도 말하자면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거 아세요 여러분

모든 배우가 바라는 삶을 연기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다짜고짜 천 만원을 빌려 달라고 졸라야 하고

저는 선생님이 아녜요

당신의 말이 감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 일입니다 그것이 수업입니다

그러니 말로 감정을 표현해 보셔요 노력해 보셔요 당신에게는 연극이 아닌 진심이어야 하고 그것이 가장 좋은 학습 방법이기에 나는 애써 연기를 하고 열심히 하고 또 하다 보니

어느새 진심이 되었네 어떻게 하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는데

연극은 도무지 끝날 생각이 없네

말하기 수업 1

요즘은 기계 말 사람 말을 구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굳이 이 곳에 오게 되었어요?

처음은 무엇도 웃음입니다
숨긴 것은 이빨인가요? 발톱인가요? 짖을 요량인가요?

기계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저는요
애써 느리게 따뜻하게 말합니다

개들의 배는 언제나 느리고 따뜻하죠 짖지 않고 따뜻하죠
당신을 좋아해요 진심으로 당신은 나의 친구예요 할 때는

애써 배부터 보여준다고 합니다

가끔 짖기로 결심한 집시의 배에서 나던 소리도 생각이 납디다만

저는요
애써 느리게 따뜻하게 말합니다

당신도 배를 보여주세요 따뜻하게 따뜻하면 참 좋지 않을까요

말은 이제 끊이지 않습니다
서로 배를 보여주려 안달이고

그렇게 배웁니다

말 하는 법 서로 배웁니다

때로는 말 못하는 것들에게서도 배웁니다

예, 아직은
기계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코끼리를 넣어보세요

냉장고를 고쳐보겠다고 벽장마저 다 뜯어내다가 기어이 쓰러트리지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바람에 생긴 상처 피는 방울 방울 떨어지는데 역시 못 내 서러운 것을 보니 혼자 사는 것은 어려운 건가 보다 하고 마침내 찾아낸 콘센트 전원이 빠졌겠지 하는 헛된 희망을 비웃네 켜 질 생각을 안 하네 꿋꿋하게 먹통이네 빌어먹을 냉장고네 냉장고 때문이네 요즘 내가 겁도 많고 말도 많고 슬픔도 많은 까닭은 아마도 냉장고 때문이네 냉장고는 내 친구가 아니니까 탓을 해도 괜찮을 법이지 그런데 말이야 냉장고가 혹여 서러우면 어떻게 하지 버려질 것을 알고 정말 서러우면 어떻게 하지 어쩔 수 없지 누구나 다 그래 사람도 그래 사람도 버려져 사람도 버려지고 냉장고도 버려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그건 상자 안에도 없어 들여다 봐도 알지만 안 봐도 알아 이제 어른이 됐구나 상자를 떠올려 봐도 그저 그렇구나 그래도 냉장고는 늘 여는 것이 재미있어 기대가 되지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리는 건데 그게 언제나 좋지 재미있지 그러니까 말이야 아! 냉장고구나 아 냉장고가 내 상자였구나! 다 고장이 나고 나서야 알았구나 고마웠구나 아! 왜 나는 다 지나고 나서야 아! 하고 아는 것만 수두룩하게 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사람 고쳐 쓸 일 없다 하고 사람들은 희망을 자꾸 버리네 그러니까 사람들 대신 나라도 좀 희망을 갖자 나라도 나를 좀 고쳐보자 사람 나 작가 그래 작가는 언젠가 비행을 하다가 사라졌다 하고 말하자면 꼭 자신이 적은 말처럼 되었다는 것인데 그럴듯한 이야기지 참 그렇지 그런데 그런 것도 좋으니 말처럼 되는 일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말처럼 될 지 모르니까 앞으로는 좋은 글만 적어야겠다 무엇이 어찌 되었던 결국에는 모두 행복했습니다 하고 써야겠다

군사분계선

평양 냉면은 맛이 있나 없나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내가 먹었던 게 평양 냉면은 맞는지 아니면 평냉인지 평냉이면 맛이 있는 것이었는지 삼팔선 근처도 못 간 냉면이었는지 그걸 좀 알려달라는 핑계도 좋고 정말 맛이 없다며 오는 길에 그리 정해서 이제 다시는 안 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듣는 것도 좋겠네 아니면 뭐 그냥 슴슴하네 평범하네 유명한 집이라 하던데 그냥 그렇네 에이 하는 말도 좋겠네 깔깔 하고 좋겠네

슴슴한 맛도 맛이라 평양 냉면이 좋은거라더라 슴슴한 마음도 마음이라 사람이 좋은거라더라 그것도 이해를 해야 아는 맛이구나 맛도 이해가 필요한데 마음이라고 안 필요할까 평양 냉면인지 평냉 뭣인지 뭐 어디 노보르시비르크 냉면이라던지 일단 이해를 해 보자 한 번은 식초도 쳐 먹고 그냥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쳐먹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이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인데 다 이해하고 나서 마침내 드는 생각이 그냥 슴슴하네 그냥 평냉이네 그냥 노보르시비르크 냉면이네 어디 뭐 보다도 못하네 그것도 좋은데 말이지 좋다 이말인데 일단 군사분계선을 넘어보자는 말인데 평양 냉면을 진짜 평양 냉면을 먹으러 가는 길에는 거기 넘잖냐는 말인데 그런 말인데

그러니까 평양 냉면이 벌써 좋은데
내 말은 그런 말인데 말이지

운 행 종 료

그 누구도 나를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주세요 내가 가지 못한다면 기다리는 일도 없게 해주세요 그저 하루의 한켠에 잠깐 쌓인 먼지가 되면 먼지는 후 불어도 늘 그랬듯 다시 쌓이니까 그 정도가 아주 적당하겠습니다 정류장에는 늘 한 둘 많지도 않고 한 둘 정도가 뭐라도 오는 쪽을 보며 자꾸 앉아있고 가끔 그런 모습을 보더라도 떠오르는 일들이 더는 없게 해주시고요 이왕이면 배차 간격은 견딜 수 있을 만큼으로 해주십시오 마을 버스는 너무 느리고 느리게 가다 보면 정이 들어도 너무 많이 드니까 웬만하면 빠르게 가는 고속 버스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저도 다시 오지 않을 것이 되게 해주세요 오지 않을 일을 안다면 기다릴 일도 없으니까요 현대 사회에서는 배차 간격도 남은 시간도 운행 종료와 같은 것도 잘 알 수 있으니까요

자기 전에 한 알 복용하세요

요즘은 바람이 참 좋더군요

점심에는 뭇국이 나왔는데 지겹기도 했어요
아니야, 씁쓸한 것이 차라리 달기만 한 김치찌개보다는 나았죠

말들
별 것도 아닌 말들

호주머니에 다시 욱여넣습니다

닿지 않으면 참말로
우습게도 변하는

말들

한 두 가지 정도
당신에게도 뻗치다 이내 풀이 죽는 마음과

어차피 말이야
언제라도 더는 못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인데
너는 뭐가 그렇게 서글프니, 하는

말들
별 것도 아닌 말들

끝내 깊게 쉬는 숨과 함께 삼키는 일

모범 택시

아저씨는 사실 안검하수였다고 한다 차가 자꾸 기울기에 그렇죠 아니 잠깐만 우왁 부딪혀요!

낮 볕에 벌써 꾸벅꾸벅 눈이 감기는 것입니다 저도 감기는데 아저씨라고 안 감기실까 하여 나도 애써 깨어있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를 동지애로 목적지로 간다 서울 아저씨들은 졸면서도 잘 가네 대전보다 길도 험하고 차도 많은데 고가도로에서 떨어지면 열의 몇 번 생존할 지 계산은 차마 못하겠습니다 저 암산 잘 못해서 눈 감고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저 잘 것 같아요 문득 자다가 아주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다가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없지 내 삶 있는 힘껏 다시 부릅뜬다 어우 근데 정말 너무 졸려요 아저씨 승객도 이렇게 노력하는데요 아저씨 안검하수 수술 안받으셔도 되니까요 제발 부릅떠 주십시오 주님이라도 찾겠습니다

다 오면 갑자기 풀리는 긴장 아 긴장하여 졸렸나 하고 별 일 없다는 듯 하는 대화 어이구 여기 요즘 외국인이 부쩍 많아졌어 아 그래요? 저도 외국 사람이랑 일하는데요 어우 어디서 일을 하시길래?

그렇게 치열하게 산다 칼 같은 볕뉘 위에서 다들 휘청이며 산다

늑장

그간의 일들을 볕에 잘 말려
대신 꽂아 넣어둡니다

문과 답을 적절히 적어 남겨두고
그 김에 조금 게을러 보는 것입니다

부어 대던 장맛비 사이로
아직도 소식이 오는 것 같아서

방금 들은 것 같은 여름 인사에
헛대답도 해보는 것입니다

결국 얼어 주름질 것이므로
한 철 소용일 것이므로

오지 않은 단풍을
그 김에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그저 가을이 자꾸 늦는 까닭이라 해 두는 것입니다